'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육사의 시 '광야'에 등장하는 프롤로그다. 비내리는 개천절 덕분에 여유를 즐기고 있으니 하늘 열린 개천(開天)의 의미를 한 번 상기해보자. 환웅이 우사•운사•풍백을 거느리고 함께 세상을 둘러보다 곰과 호랑이를 만났다. 두 짐승이 사람되길 갈망해 환웅이 동굴에서 쑥•마늘만 먹고 정한 날짜를 참아낸다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 짐승은 동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로 연명하며 버텼다. 하지만 육식동물 호랑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쑥과 마늘에 질려 동굴을 박차고 나갔다. 우직한 곰만 환웅이 정해준 기일을 모두 채우며 쑥과 마늘만 먹은 댓가로 사람이 되었다. 환웅은 곰이 사람이 되었다 하여 웅녀(熊女)라 이름을 지었다. 그리곤 웅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여 단군을 잉태했다. 이것이 단군신화이자 개천절 시놉시스다.
그런데 이육사는 이처럼 하늘이 처음 열린 날 무슨 이유로 닭소리를 등장시킨 걸까. 이육사는 아마도 하늘이 처음 열린 우리의 삶은 결국 계란인 걸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삶이 계란'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요즘같은 삼중고(고물가•고환율•고금리)시대에 가격이 다른 물가처럼 천정부지로 치솟아 우리네 밥상에 계란이 오르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다면 식탁의 찬(饌)의 가짓수가 절반으로 줄어들만큼 우리네 삶속에 계란만한 친근하고 고마운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고만고만한 가격을 유지 하며 우리삶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찐의리에다 가성비까지 높은 계란만한 것을 찾기 어려워 '삶은 계란'이란 말이 나온건 아닐까.
인간역사 이전 선사(先史) 내진 단군시대에 던져진 화두(話頭) 역시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다. 이를 놓고 오늘날까지도 수 많은 위인과 철학자들에게 풀기 어려운 ✖방정식을 던져준 점 역시 삶은 계란임을 웅변하는 증거다. 또 닭이 자신이 낳은 알을 품어 병아리로 만드는데 21일(투에니원)이 걸리듯 곰이 동굴속에서 쑥•마늘만 먹고 버티다 단군신화속 100일이 아닌 21일만에 사람(웅녀)이 된점 또한 '인간의 삶은 계란이다.'를 재삼 강조하는 빼박 공통점이다.
한편 잊고있던 냉장고속 계란이 상했는지 여부는 소금물에 담그면 바로 알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건 가라앉고 상해서 버려야 하는 것은 물위에 둥둥 뜬다. 우리 인간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무슨일이 생기면 정직하고 성실히 살아 온 이들은 묵묵히 수면 아래서 각자의 역할수행에 최선을 다한다. 반면에 무언가 죄를 저질러 어딘가 캥기고 제대로 살지도 못한 이들은 물 위에 떠 세치혀만 나불댄다. 빈수레처럼 되도 않는 소음을 내며 이러쿵 저러쿵 지껄이면서 마치 자기 혼자 온나라 걱정을 떠앉은듯 난리(亂離) 부르스를 친다.
따라서 위에서 찬찬히 내려다 보면 상한 계란처럼 물위에 떠있는 일부 사람들 목소리만 부각되어 마치 내일이라도 나라가 곧 망할듯 소란을 피운다. 하지만 아래에 가라 앉아 침묵하는 대다수 선량한 사람들이 버텨 주기에 나라가 갑자기 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애국자다. 결국 '삶은 계란'이라는 말은 가벼운 조크보단 이처럼 심오한 철학적 사상이 담겨있음을 스탠딩 코메디 계의 레전드 故 김형곤씨에게서 배운 내용임을 밝힌다.
한편 기자의 갠적 입장에서 가라 앉은 계란처럼 잠자코 침묵은 금(金)처럼 있으려고 해도 기록적인 지지율 참사를 겪고 있는 굥정권의 작태(作態)는 목불인견(目不忍見) 상황이다. 나라가 4대 리스크(여사•언사•인사•참사)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참아낼 수 있는 수인한도(受忍限度)의 문지방 Threshold을 넘어도 너무 넘은 것 같다. 이 경우 침묵은 값비싼 금(金)보다 치명적 독(毒)이다.